전체 글 (529)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이디어 1 어느 순간부터 남자는 가끔씩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뿌옇다고 하기는 애매하고, 그림자나 잔상 같은 게 상대방의 얼굴 속에서 비쳐 보였다. 난시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안과에서도 별다른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삶에 큰 지장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살았다. 얼굴의 잔상은 컨디션이 안 좋거나 몸이 아플 때 더 자주 보였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미대 수업이 끝나면 헬스장으로 향했다.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고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저절로 금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남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 잔상은 이제 더 이상 잔상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해졌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현재의 얼굴, 그리고 과거의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 눈을 깜빡일 때.. 완벽주의 손으로 그린 드로잉 표지, 제목으로는 다소 길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귀를 예쁜 폰트로 적은 책은 많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는 아닐까 싶었지만 일단 골랐다. 출근길의 스마트 도서관 기기 앞에서는 천천히 음미하며 책을 고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문장이 좋았다.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느낌도 적었고, 그렇다고 무작정 힘내라는 응원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부감이 없었다. 담백하고 쉽게 적어 내려 간 이야기는 술술 읽혔다. 이 책은 '힘 빼고 유연하게, 모든 순간을 파도 타듯 즐기는 심리 수업'이라는 부제처럼 심리학에 기반한 사람의 유형을 설명하고, 유형별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완벽주의' 유.. 업데이트 아침에 번쩍 눈을 떴다. 글자 그대로 번쩍하고 떴다. 어제 자기 전에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로 침대를 보러 가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눈을 뜬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었다. 8시 알람을 끈 게 방금 전이었는데 왜인지 두 시간 삼십 분이 사라져 있었다. '아침 일찍'에서 '일찍'이 사라졌다. 실제로 침대를 보러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어째서...? 나갈 결심만 하다가 저녁이 다 되어 집을 나섰다. 모든 품목이 다 그렇지만, 침대도 눈을 돌리면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모닝 사려다 벤츠 산다'는 얘기를 하며 '그돈씨'라고 하던데 여기도 딱 그랬다. '그 돈이면 씨X OOO를 산다'의 약자다. 어제 미리 침대를 봤었는데 마음에 드는 건 매우 높은 확률로 비쌌.. 검소 종종 검소하다거나 검소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데 이럴 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사치스럽다는 말보다는 칭찬인 걸 알지만 뭐랄까, 뭔가 묘하다. 남색 후드 집업을 대충 때려 입고 출근했던 날 검소하다는 말을 또 들었다. 그날 대충 걸친 후드집업은 유니클로 제품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스톤아일랜드였다. 안에 입은 티셔츠는 꼼데가르송이었다. 묘한 괴리는 이런 곳에서 온다. 나는 나름 옷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인데, 항상 검소한 이미지라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도 검소하다는 말을 들었다. 역시나 묘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향했는데, 문득 오늘 내가 걸친 옷과 가방을 다 합쳐도 십만 원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십만 원도 과분하다, 육만 원도 안 됐다. 나 어쩌면 제법 검소할지도. 가면 가끔 가면을 쓰고 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색한 자리에서 억지로 재잘거리고 난 후 특히 그렇다. 밝은 척, 즐거운 척 분위기를 맞추고 평소보다 더 노력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하하 호호 웃고 돌아서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철없고 말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동창 초중고를 함께 나온 친구들을 만났다. 셋 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셋이 한 반이 되었던 적은 없지만 둘씩 모두가 친해서 셋이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약속장소는 집 근처의 즉석떡볶이 전문점이었다. 친구가 "우리 고등학교 때 자주 왔잖아"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열 번도 넘게 왔다고 했을 때는 더 놀랐다. 정말 해당 부분 기억만 지워진 것처럼 모든 게 낯설었다. 사장님께서 27년째 장사를 하고 계시다고 했지만 나는 초면이었다. 떡볶이는 맛있었다. 진학이나 취업으로 고민하던 우리의 화제는 결혼과 육아, 영어 교육이 주를 이뤘다. 언젠가는 항노화, 회춘, 요양원이 우리의 화두가 될 날이 오겠지. 그때도 아마 지금처럼 즐거울 거다. 고고매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만사를 해결하다 우연히 발견한 고고매치. 알리 안에 있는 미니게임인데 고양이 캐릭터가 귀여워서 시작했다가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어느 날의 주말에는 거의 8시간 넘게 가만히 앉아서 고고매치만 했다. 똑같은 아이템이 세 개 모이면 팡팡 터지는 단순한 구조지만 그 단순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평소에 게임을 안 좋아하는데, 한번 시작하면 미친 듯이 몰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친 듯이 해서 어느새 872판을 도전하고 있다. 처음엔 뭘 잘 몰라서 코인 팍팍 써서 하다가 가상의 가산을 탕진했다. 업데이트 전에는 1000판 초반대가 막판이었다던데 최근에 1333판까지 왔다는 댓글을 봤다. 하 아직도 한참 남았다.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고 싶다. 알리 고양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다. 뷰러 대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마련한 취업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2박 3일 동안 합숙하며 면접 특강, 조별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당시 우리 방에는 최 씨 성을 가진 여자 셋이 배정되었다. 이름 가나다 순으로 방을 배정한 게 틀림없었다. 우연히 최 씨들은 셋 다 모두 동갑이었다. 초면이었지만 동갑에 같은 성씨, 그리고 취준생이라는 배경 덕분에 빠르게 친해지기는 개뿔, 어차피 2박만 하고 말 사이니까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거리를 두고 지냈다. 둘째 날 아침, 룸메이트 중 한 사람이 내게 뷰러가 있냐고 물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두 최씨 중 한 명은 매우 화려했고 다른 한 명은 매우 수수했다. 뷰러를 물어본 사람은 화려한 쪽이었다. 나에게는 엠케이가 선물해 준 시세이도 뷰러가 있었다. 3년.. 이전 1 ··· 5 6 7 8 9 10 11 ··· 6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