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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눈 깜짝했더니 12월 말에 도착했다. 나는 연말마다 회사에서 내년도 신규 프로젝트를 생성한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2023년 프로젝트를 만들며 종료일을 2024년 1월 4일로 설정했다. 너무 먼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결혼하게 되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 오늘은 내년 프로젝트의 종료일을 2025년 1월 5일로 설정했다. 1년 뒤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내년 이맘때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선생 집에 대해 느꼈던 감정은 바선생을 조우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바선생 만남 전, 나는 이사한 집이 좋았다. 100점 만점에 만점이라고 시원하게 외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작은 것부터 하나씩 직접 가꿨다는 정이 있었다. 바선생은 월요일 아침, 앞머리 구루프를 말고 방에서 나오던 내 앞에 등장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거미는 많았어도 바선생의 비읍도 본 적 없는 집이었다. 홀연히 나타난 바선생은 무인양품 쇼핑백 뒤로 걸어갔다. "바선생!" 내가 외쳤다. "뭐? 바선생?" 남편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무... 무인양품 쇼핑백 뒤에!" 생존에 위험을 느낀 내 목소리에 남편은 부엌에서 뛰쳐나왔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쇼핑백을 젖힌 남편의 헉 소리가 들렸다. 거기는 바선생이 미동 없이 있었다. "이걸 잡..
D-1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오늘에서야 부랴부랴 캐리어를 열고 짐을 쌌다. 여행지에서 입고 싶은 옷을 고르며 새삼 옷이 참 많구나 싶었다. 다 입고 싶어서 아주 깊은 고민을 했다. 어제 연습용으로 한복을 한번 입어봤는데 좀 신기했다. 내일 이걸 입고 돌아다닐 거라니, 역시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결혼식 로망은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전통혼례나 외국에서 결혼하기, 두 번째는 '축의는 정중히 사양합니다'를 하는 거였다. 후자는 실패했다. 둘 다 난이도가 꽤 높았는데 그래도 하나는 지켜서 다행이다. 전통혼례 하는 걸 보니 절을 겁나 하던데 내 무릎과 허리의 안위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통혼례를 한다고 했더니 거기도 신부대기실이 있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있다. 비록 폐백실 한편..
언니 자매라고 하면 언니랑 친하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다. 내 대답은 항상 글쎄요, 혹은 아니요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언니랑 자주 놀았고 주말이면 둘이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중간에 매점에서 언니와 컵라면을 먹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러다 각자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둘이 노는 시간은 줄었다. 우리 두 사람의 취향과 성향은 무척 달랐다. 유일한 접점은 만화책이었는데, 덕분에 우스갯소리로 만화책방 주인과 손님 같은 관계라고 묘사했다. 언니에게 재미있는 만화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언제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컬렉션 중 하나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주변에 언니와 옷을 같이 입거나, 둘이서 자주 노는 자매를 보면 신기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옷 취향은 매우 달랐고 사이즈..
할까말까 문득 인생은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이걸 할까 말까. 나는 대부분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 쇼핑 고민만 안 해도 내 고민 중 절반은 사라질 거다. 삶이 살까 말까의 고민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너무 아까운 기분. 하 근데 아이보리색 코트 사고 싶어... 살까 말까...
축농증 지난주 토요일 밤, 갑자기 목이 따끔거렸다. 건조해서 그런 거겠지 싶은 맘으로 잠을 청했는데 몸살이 났다. 일요일에도 청첩 모임이 있어 골골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팝업 스토어에 갔다가 집에 오자마자 바로 뻗었다. 기절한 듯 잤는데도 몸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월요일, 팀 회의가 있어서 출근한 후 6시간 휴가를 내고 2시간 만에 퇴근했다. 병원에 갈까 고민했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이때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화요일에도 휴가였는데 다행히 반짝 살아났다. 본가에 가서 밥을 먹고 오후에는 한복을 찾으러 종로로 갔다. 원래는 전시도 보려고 했는데 에너지가 없어 집에 돌아왔다. 수요일은 팀장님의 배려로 재택 근무를 했다. 재택일 때 불시에 연락이 오기 때문에 늘 노트북 앞에 대기하는..
배포 절찬리 배포 중인 나의 청첩장. 내 결혼식 청첩장이지만 사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안마쿠폰 뿌리던 것처럼 현실성이 없는 기분이다. 청첩장 모임은 처음엔 신났다가 중간엔 힘들었고 이제는 좀 편해졌다. 그냥 오랜만에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결혼 선배님들의 조언도 흥미롭다. 고백하자면 나는 애매한 사이의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난감했다. 축하한다며 받고 모른 척한 적도 많았다. 이제 와서 후회되는 건 안 가더라도, 축의를 안 하더라도 받을 때 좀 더 많이 축하해주지 못한 점이다. 주는 사람도 굳이 막 꼭 오라고 주는 건 아니었을 텐데 그땐 잘 몰랐다. 청첩장을 낭낭하게 찍어서 좀 많이 남을 거 같다. 생각보다 나와 남자친구는 초청할 사람이 많지 않..
앞머리 앞머리가 많이 길었다. 숱이 많지도 않은데 길이까지 길어지니 거울을 볼 때마다 남루하다. 이럴 때를 위해 주기적으로 앞머리펌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가격이 많이 올랐다. 삼만 원은 그럭저럭이란 마음으로 지불할 수 있었지만 얼마 전 가격 안 묻고 받았더니 오만 원이 되어 있었다. 두 달에 한 번 받는데 오만 원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냥 헤어롤에 의지하기로 했다. 허나 전혀 의지가 되지 않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가라앉는 볼륨은 남루한 내 얼굴을 더욱 빈곤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셀프 앞머리펌에 도전했다. 셀프 앞머리펌 약은 굉장히 다양했다. 후기를 찾았다.효과가 없다, 앞머리가 다 탔다 등 선뜻 구매할 수 없는 제품들이 많았다. 그러다 블로그 후기를 하나 발견했다. 물론 소정의 원고료와 제품을 지급받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