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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인 첫 뜨개질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뜨개질에 푹 빠졌다. 시작은 대바늘이었지만 요즘은 코바늘만 뜨고 있다. 수정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비록 도안은 못 보는 까막눈이지만 다양한 유튜브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에 완성작은 늘어만 가고 있다.주말에는 마케팅을 굉장히 잘하기로 유명한 '바늘이야기' 오프라인 매장에도 다녀왔다. 그곳은 뜨개인들에게는 유토피아나 다름없었다. 나도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영수증을 들고 있었다. 토요일에 실을 사고 일요일에 가방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 집중하지 않고 뜬 구간은 코가 늘어나서 원래보다 좀 어긋났다. 그래도 얼추 그럴싸해서 오늘 바로 들고나갔다.뜨개질을 배운 이후 나는 거의 매일 퇴근 후 집에서 뜨개질을 한다. 뜨개질을 하지 않았다면..
독후감 초등학생 때 숙제로, 혹은 백일장으로 무수히 많은 독후감을 써냈다. 빨간색 각진 테두리가 200개씩 있던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들이었다. 낼 때마다 내심 수상을 기대했고 기대는 번번이 낙심으로 바뀌었다. 왜 나는 독후감 상을 받지 못할까. 다른 상에 비해 독후감은 유독 상 받는 사람이 비슷했고, 나는 그들의 비결이 궁금했다. 그때 내가 쓴 독후감은 독후감이 아니라 줄거리 요약의 다른 말이었다. 책의 줄거리를 쭈욱 요약한 후 맨 마지막에 '나도 주인공처럼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라는 문장 하나를 덧붙인 게 끝이었다.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 '다짐'이 독후감의 본질인 것을.늘 금상을 도맡던 친구의 독후감을 읽었을 때 그래서 충격 받았다. 얘는 왜 줄거리를 요약하지 않지? 줄거리는 양념처럼 ..
연휴 금요일에 휴가를 사용하니 4일 연휴가 되었다. 연휴는 질리지도 않고 언제나 반갑다. 쉴 틈 없이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나흘 연휴라면 삼일까지는 행복하고 마지막 날은 다음날을 생각해 우울해지곤 했다. 아직 토요일이다. 내겐 일요일이 있다. 내일의 슬픔은 내일에게.몰랐는데 일기에 너무 소홀했다. 5월에 단 한 번도 안 썼다니. 한 달도 더 전에는 인스타그램 앱도 지웠다. 계정까지 지우기는 좀 아까워서 앱만 지웠는데 덕분에 삶이 조금 더 청명해졌다. 친구들의 소식을 알 수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거나 정보 과잉에서 벗어나니 삶이 조금 연장된 기분이 들었다. 인스타그램 대신 로켓이라는 앱을 깔았다. 최대 20명의 친구들끼리 실시간으로 찍은 사진만 공유할 수 있는 앱인데, 관심 있..
회사 가기 싫어 어제는 선거 덕분에 회사에 안 갔다. 오늘은 재택근무를 신청해서 안 갔다. 내일도 회사에 안 가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주 월요일도, 화요일, 수목금 모두 회사에 안 가면 얼마나 좋을까? 단,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면 좋겠다. 회사에서 빡칠 때마다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을 내야지, 하기 싫은 일을 하니까 돈을 받는 거라고. 가끔은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위시리스트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중에 회사에서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슬플 거 같은데. 마음이 갈팡질팡.
날씨 갑자기 더워졌다. 수도관이 동파되어 끙끙거렸던 기억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날들을 지나면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 거다. 눈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글쓰기도 근육과 같아서 안 쓰면 퇴화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을 실감한다. 작년 5월, 직장인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똑 떨어졌다. 떨어질 거 알면서도 막상 접수할 서류를 만드니까 기대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년에는 꼭 더 잘 쓴 소설로 응모해야지, 다짐했는데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바빴다는 핑계를 대기엔 너무 안 바빴다. 매일 한가했고 자기 전에는 늘 넷플릭스를 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기도 방치했다. 매번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번번이 실패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난달 헬스장에 ..
자취록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빨래를 돌리고 밥을 지었다. 샤워를 한 후 빨래를 널고 밥을 소분했다. 머리를 말리고 청소기를 돌렸더니 11시가 넘었다. 나는 뜨개질도 하고 싶고 눈물의 여왕도 봐야 하고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싶은데 시간이 모자라다. 초보 자취생은 여유가 없다. 언제쯤 능숙해질까!
편두통 전에 없던 두통이 생겼다. 꽤 잦다. 오늘은 버스에서 잘못 자고 일어났더니 두통이 엄습했다. 일단 참았다. 고속버스였기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두 시간을 더 달려 집에 도착해도 두통은 여전했다. 세 시간 뒤에 친구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을지 말지 고민했다. 진통제는 최대한 안 먹고 싶어서 버텼다. 집을 나설 때 약을 하나 챙겨갈까 하다가 그냥 나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배신당했다. 머리는 점점 더 아파왔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는 거라 즐겁게 보내고 싶었는데 머리가 아파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급하게 약국을 검색했는데 멀기는 또 오지게 멀었다. 결국 끝까지 버티다가 조금 전 약을 먹었다. 결국 먹을 거였다면 진작 먹을 걸... 항상 두통약은 후회를 동반한다. 아까 집..
뜨개질 사내 뜨개질 동호회에 가입했다. 고등학생 때 옹졸한 목도리를 뜬 걸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총 다섯 명의 사람들 중 겉뜨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혼자만 초보라 잔뜩 쫄았는데, 조금 늦게 오신 분도 생전 처음이라고 해서 안심이 됐다. 기초반 수업이라 수세미 뜨는 것부터 시작했다. 같은 방향으로 대바늘을 움직이는 반복 작업은 매우 힐링이 되었다. 잡념이 사라지고 온 신경은 바늘에만 쏠렸다. 50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근 가장 집중한 순간이었다. 어제가 첫 수업이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자기 전까지 열심히 숙제를 했다. 세 개의 수세미 중 하나를 완성했다. 이제 나는솔로 기다리면서 얼른 뜨개질해야지. 금단현상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