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29)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옥철 보고 장표를 만들기 위해 새벽 6시 20분에 일어났다. 야심 찬 기상이었다. 6시 53분에 집을 나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자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역대급으로 사람이 많았다. 지하철 손잡이는 잡을 엄두도 안 나고 선반 앞에 있는 가로 봉을 잡고 가는데 허리가 활처럼 꺾였다. 모든 사람들이 일렬로 선반 앞 봉을 잡고 있는 모습이 흡사 엉덩이 체벌을 기다리는 학생들 같았다. 지하철에 사람이 쏟아져 들어올 때마다 안쪽에서는 비명이 난무했다. 알고 보니 전날 영등포역에서 탈선 사고가 있었다. 그 여파로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해 아주 굉장한 풍경이 이어졌다. 내가 평소대로 출근했다면 더 늦었을까? 나의 호기로운 출근은 보람이 없었다. 점심시간.. 용사 하루 종일 집에서 글을 썼다. 사실은 뻥이다. 정정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글 써야 되는데' 생각만 하면서 딴짓을 잔뜩 했다. 글도 쓰긴 썼다. 200자 원고자 80매가 목표였는데 30매를 썼다. 선생님은 "빨리 쓰는 게 자랑은 아닙니다"라며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데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했다. 나는 빨리만 쓰고 잘 쓰진 못해서 답답하다. 잘 쓰고 싶다. 완전 잘 써서 빨리 회사 때려치워야 하는데. 잘 못 쓰는 글을 쓰면서, 또 내일 출근해서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썩은 나무로 된 목검을 들고 풀숲은 헤치는 용사가 된 기분을 느꼈다. 내 말은 아마 낡은 달구지에 나를 태우고 다그닥 다그닥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없다. 말은 애써 달리고, 나는 불편한 달구지에서 엉덩이를 .. 무능 요즘의 나는 여러모로 무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일하는 분이 굉장히 유능해서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연차도 훨씬 낮은데 나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열정적이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던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 같이 일하는 분은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신기하고 또 마음속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오늘은 단편소설 합평을 했다. 나의 소설은 원고지 80장을 못 채우고 65장에서 막을 내렸다. 함께 수업 듣는 학우들은 예쁜 포장지로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었지만 선생님은 냉철했다. '문장이 안정적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것에 비해 소설을 많이 안 읽은 것 같다'고 순살을 만들어 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조언을 해주셨는데 다 맞는 말이라 열.. 젊은이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는데 출근이 늦었다. 일요일에 장장 네 시간 동안 미용실에 앉아서 머리를 했는데 또다시 해그리드를 얻었다. 드라이가 맘에 들지 않아서 다시 말리다가 쫓기듯 헐레벌떡 집을 나서느라 타려던 지하철을 놓쳤다. 다시 한 드라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출근도 늦었으며 지하철도 놓쳤다. 여기서 일단 오늘의 에너지 절반을 사용했다. 사무실에 가자마자 어제 다 못한 일을 마무리하는데 중간에 변수가 생겨서 또 늦어졌다. 11시 35분에는 점심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그 안에 끝내려고 미친 듯이 마무리를 짓고 딱 30분에 메일을 보낸 후 신속하게 나갈 채비를 마쳤는데 점심 먹기로 한 분이 아직 회의가 덜 끝났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조금 김이 빠졌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유에 잠시 숨을 돌렸.. 초고3 소설 마감이 연장되어 오늘 저녁까지는 반드시 완성을 해야 한다. 작성한 페이지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됐다. 그냥 오늘은 나의 저녁이 밤 9시까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3시간 안에 A4 7장 이상을 쓸 수 있을까? 세 시간이 아니고 3주가 지나도록 한 장 썼는데? 소설을 쓰려고 하니 요즘 뜸했던 일기가 그리워져서 이렇게 기어 왔다. 이건 흡사 시험기간에 갑자기 방 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와 비슷하다. 요즘 날씨가 참으로 좋다. 나는 봄만 예쁜 줄 알았는데 가을에도 가을만의 정서가 있다. 싱그럽던 여름의 빛깔들이 차분하게 톤 다운되는 걸 보면서 내 머리도 톤 다운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더 시급한 게 펌인 거 같아서 장장 미용실에서 4시간을 소비했다. 이리저리 혹사당.. 초고2 지난주 목요일까지인 줄 알았던 단편 소설 작성이 이번 주 목요일까지였다. 일주일이 더 늘어났지만 내가 쓴 페이지는 A4 단 한 장뿐이라 초조하다. 원고지 80매에서 100매, A4 용지로 환산하면 약 10장 내외를 써야 하는데 갈 길이 너무 멀다. 이거 말고도 이번 주 금요일까지 업무용 제안서를 하나 써야 하고, 11월 6일까지 다른 단편 소설 초고를 완성해야 하며 11월 중순까지는 상업 장편 영화 제안서도 써야 한다. 이걸 우르르 한꺼번에 다 생각하면 너무 막막해서 일단은 내일모레까지 완성해야 하는 단편 소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하, 과거의 안나들아... 너희는 대체... (하략) 혼인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오늘, 한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그 부부 덕분에 몇 년 후 나도 세상에 나왔다.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지만 나는 운이 좋게 좋은 부부의 자녀가 되었다. 결혼기념일 40주년 기념 식사로 쟁반자장을 먹겠다는 아빠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맛있게 요리할 테니까 그냥 집에서 먹자는 엄마는 더 귀여우셨다. 귀여운 부모님 밑에서 귀여운 딸로 오래오래 살고 싶다. 속상 문득 부모님의 얼굴을 봤는데 갑자기 나이가 드셨다는 게 확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속이 상했다. 속상한 원인에 따져 물을 수도, 이런 마음을 어딘가에 털어놓을 수도 없어서 더 속이 상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6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