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장표를 만들기 위해 새벽 6시 20분에 일어났다. 야심 찬 기상이었다. 6시 53분에 집을 나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자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역대급으로 사람이 많았다. 지하철 손잡이는 잡을 엄두도 안 나고 선반 앞에 있는 가로 봉을 잡고 가는데 허리가 활처럼 꺾였다. 모든 사람들이 일렬로 선반 앞 봉을 잡고 있는 모습이 흡사 엉덩이 체벌을 기다리는 학생들 같았다. 지하철에 사람이 쏟아져 들어올 때마다 안쪽에서는 비명이 난무했다. 알고 보니 전날 영등포역에서 탈선 사고가 있었다. 그 여파로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해 아주 굉장한 풍경이 이어졌다. 내가 평소대로 출근했다면 더 늦었을까? 나의 호기로운 출근은 보람이 없었다.
점심시간까지 미뤄가며 보고 장표를 만든 후 의욕적인 저연차 동료와 함께 본부장님 보고를 했다. 그리고 왕창 깨졌다. 와자자 자장 와와 왕자자자 자창 깨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의욕적이었던 동료는 멘탈이 나갔다. "이렇게 의욕을 눌러도 되는 거예요?" 충격에 휩싸여 동공이 풀린 동료를 보며 이 사람도 곧 나와 같은 종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란 참 대단하다. 이렇게 열심히 하려는 사람의 의지를 한 순간에 꺾어버린다. 나의 의지도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닳고 닳아서 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