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집에서 글을 썼다. 사실은 뻥이다. 정정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글 써야 되는데' 생각만 하면서 딴짓을 잔뜩 했다. 글도 쓰긴 썼다. 200자 원고자 80매가 목표였는데 30매를 썼다. 선생님은 "빨리 쓰는 게 자랑은 아닙니다"라며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데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했다. 나는 빨리만 쓰고 잘 쓰진 못해서 답답하다. 잘 쓰고 싶다. 완전 잘 써서 빨리 회사 때려치워야 하는데.
잘 못 쓰는 글을 쓰면서, 또 내일 출근해서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썩은 나무로 된 목검을 들고 풀숲은 헤치는 용사가 된 기분을 느꼈다. 내 말은 아마 낡은 달구지에 나를 태우고 다그닥 다그닥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없다. 말은 애써 달리고, 나는 불편한 달구지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어디론가 향하는데 아무도 목적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소설은 쓴 부분까지 제출할 것이고, 내일은 지난주에 미처 못 끝낸 보고 장표를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할 거다. 목적지는 몰라도, 내 칼은 썩었어도 성실한 일개미와 애매하게 불성실한 학생으로 살아가는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