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상상했던 집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얀 벽지와 하얀 가구들, 모델하우스처럼 늘 깨끗한 집. 남편의 눈물겨운 발품으로 하얀 벽지까지는 성공했다. 가구는 흰색을 기본으로 깔았지만 남편이 오크색 원목을 좋아해서 좀 섞였다. 오크와 화이트, 하얀 벽지. 여기까지는 돈으로 사수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나 이제 '늘 깨끗한'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물론 이것도 돈으로 가능한 영역이지만 청소 대행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늘 깨끗하려면 늘 청소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늘 청소를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맘 잡고 청소를 하면 잠깐은 행복했다. 다시 얼룩이 지고 먼지가 쌓이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세면대 수전만 예를 들어도 방금 물기를 싹 닦고 흡족한 표정으로 손 한 번만 씻으면 바로 다시 물 얼룩이 진다. 샤워 한 번만 해도 하구수에 머리카락이 생기고 바닥은 물기를 머금는다. 사람이 살면서 늘 깨끗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흐린 눈을 해도 회색 바닥의 머리카락은 어찌나 눈에 잘 띄는지.
오늘은 세탁기 세제통에 얼룩이 졌길래 통을 빼보니 아주 안이 굉장했다. 30년간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동굴 속 검은 이끼를 보는 기분이었다. 세탁기 산지 1년도 안 됐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늘 깨끗한 집'은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