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많이 아팠다. 계산해 보니 한 달 반 동안 네 번 감기에 걸렸다. 지금이 네 번째 감기다. 이브에는 늦잠을 자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또 잤다. 몸이 너무 안 좋았는데 설상가상 저녁에 예약해 둔 식당이 있어서 억지로 나갔다. 예약금 4만 원을 길가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서 저녁을 먹는 동안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집에 와서는 바로 또 잤다. 거의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이 정도로 잤는데 더 잘 수 있다고? 싶을 만큼 잤다. 다행히 오늘은 몸이 많이 나았다. 경거망동하다가 또 나빠질 수도 있으니 이 일기를 쓰면 바로 잠을 잘 생각이다.
한파가 몰아 닥쳤던 목요일 밤, 우리 집 온수 수도관이 동파됐다. 집으로 찾아온 관리사무소 아저씨들은 며칠 전부터 수도에 물을 틀어두라고 방송을 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했다. 방송에서는 '장시간 집을 비울 경우' 수도꼭지를 틀어두라고 했다. 나는 장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한 2박 3일 비울 때 틀어놓으라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수도는 12시간도 되지 않아 얼었다. 아저씨들은 집 구조가 특이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도 마찬가지라며, 그저 날씨가 풀려서 수도관이 녹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도관 동파도 생전 처음인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집도 처음이었다.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화장실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목요일에 머리를 해서 어차피 다음날까지 머리를 못 감는 상태였다. 부엌에는 온수가 나왔기 때문에 그 물을 퍼다 세수를 하고 발을 닦았다. 금요일엔 그렇게 출근을 했고 토요일부터는 꼬질꼬질하게 살았다. 일요일, 즉 크리스마스 이브 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틀어놓은 물줄기 소리가 거세졌다. "온수가 나오나 봐!" 화장실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이 콸콸콸 나왔다. 나와 남편은 월드컵 골 넣은 것보다 더욱 기쁘게 서로를 얼싸안으며 좋아했다.
참, 빼먹었는데 수도관이 동파된 날 남편이 몸이 으슬으슬하다며 몸살 기운이 있다고 했다. 얼른 상비약을 먹이고 냅다 재웠다. 혼자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다가 빨래를 돌려서 그 빨랫감으로 가습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탁기를 돌렸고, 물은 수도관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세탁실도 얼었는데 몰랐다. 그러고 보니 방송 중 '장시간 집을 비울 경우 수도꼭지를 틀어두세요' 다음에 '늦은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지 마세요'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세탁기 밑에서 물이 찰랑이는 바다를 보았다.
이걸 어쩌지 하다가 처음엔 수건 세 개로 물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택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수건을 짜고 또 적시고를 반복했는데 수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음엔 플라스틱 그릇으로 열심히 물을 퍼 담았다. 조금 변동이 있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물을 퍼서 버리길 스무 번쯤 반복하자 땀이 뻘뻘 나고 어지러웠다. 세탁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냉장고가 있었다. 이거 얼마에 샀더라 생각하다 고장 나면 그냥 돈으로 바르자고 생각할 만큼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잤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감기몸살에 걸렸다는 슬픈 이야기.
어제와 오늘은 하루종일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덕분에 나는 많이 나아졌는데, 이러다 남편이 병날까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둘이 동시에 아프진 않다는 걸까...
+ 온수가 나오던 날, 몇 시간 뒤 세탁실의 물도 빠졌다. 지금은 온수가 나오는 것과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