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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아주 먼 옛날, 얼리버드 할인 티켓이 있길래 뭔지도 모르고 냅다 구매했다. 2022년 12월 3일의 일이었다. 당시 세 개의 전시를 동시에 예매했다. 그중 하나는 관람을 완료했고, 하나는 환불했으며 마지막으로 이 전시가 남았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버트 왓슨 전시회였다.

생소했던 이름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했던 건 전시 설명에 있는 사진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흑백 얼굴 사진, 바로 그 사진을 찍은 작가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스티브 잡스 사진 찍었으니 유명한 사람이겠지 싶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흐른 뒤, 티켓 사용 기한이 임박해져서 허겁지겁 전시 정보를 찾았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전시 기획자의 무료 도슨트가 있다고 했다. 기왕이면 도슨트를 듣고 싶어서 귀하디 귀한 오후 반차를 내고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평일 낮인데도 도슨트를 듣는 인파가 엄청났다. 전시 설명 목소리는 스피커 없는 생목이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더 해설사 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 자신이 만난 작가와의 일화 등이 섞인 도슨트는 유익했다. 사족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더러 있었고, 1시간 15분 정도의 진행에 허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그만큼 전시 기획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알버트 왓슨은 80세가 넘은 현재도 현역 작가로 활동 중이다. 피사체라면 누구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철학과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 아름다운 작품도 모두 멋졌지만 가장 좋았던 건 그가 사랑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예술한답시고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는 예술가의 사연만 듣다가 사랑꾼 작가의 얘기를 들으니 너무 흐뭇했다. 나 사랑꾼 좋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