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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기점을 1월 1일이라고 본다면 직장인의 시작은 3월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연차는 2월 28일에 소멸하고 3월 2일 자로 새로운 연차가 부여된다. 복지 포인트도 마찬가지다. 연봉 계약도, 사장단이나 임원을 제외한 일반 진급 대상자 발표도 모두 3월에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게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여전히 출근하기 싫은 날일 뿐...

1년 전 이맘때 시작했던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과정이었는데 일 년 동안 내 삶의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졸업식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으나, 졸업작품집을 위해 제출했던 과제물을 한 차례 더 수정해야 한다고 한다.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다시 마음이 묵직해졌다.

구마모토 여행은 정말 좋았다. 여행에서 두 가지를 깨달았는데, 하나는 언어에 대한 부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리고 대학 시절 교양 수업으로 일본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아마 중학생 때 배웠던 것이 기초가 되었고 대학생 때 다시 한번 상기되었을 것이다. 졸업 후에는 당연히 모두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번에 일본에 가니까 잊고 있던 일본어가 조금씩 되살아났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처럼, 언어도 뇌 주름 어딘가에 꾸역꾸역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다른 하나는 경험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예 면세점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쇼핑이라고 하기에도 소박한 나의 전리품은 비비안웨스트우드 스타킹과 손수건, 그리고 파브론 골드 감기약 단 세 품목이었다. 그 대신 쇼핑할 돈으로 료칸에 갔다. 일본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전통 숙소에서 유카타를 입고 가이세키 요리를 먹었고, 노천탕에서 혼자 호젓하게 온천을 즐겼다. 엄청난 힐링이었다. '돈 벌어서 료칸에 쓰세요'라는 후기를 읽고 갔는데 정말이었다. 내가 간 곳이 엄청 비싼 곳은 아니었는데, 정말 비싼 곳은 대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음에 일본에 갈 땐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도 또 료칸에 가야지.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