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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도

직장 생활은 올해로 만 14년을 넘어 15년 차가 됐다. 회사에서는 업무가 주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딱딱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날짜별로 할 일을 정해놓고 매일 순서대로 해치운다. 어려울 때는 또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도 알고 있다. 숙련자다.

그러나 주부로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풋내기다. 그래서 늘 허둥댄다. 자기 전에 대강 내일 할 일을 정해놓는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리셋된다. 집안일도 엄청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비효율의 끝판왕이다. 동선도 엉망진창이다. 부엌에서 베란다에 갔다가 안방에 갔는데 베란다에서 해야 할 일을 깜빡해서 두 번은 더 다녀온다. 하나를 끝내고 다음 걸 시작할 때면 아, 이걸 아까 했어야 더 좋았겠다 싶은 일들이 가득하다. 비효율의 선두주자가 된 기분이 든다. 속이 상한다기 보다는 좀 허탈하다.

이럴 때면 열심히는 하는데 일을 놀랍도록 못하던 옛날 직장동료가 떠오른다. 그도 참 답답했을 거다. 그땐 내 답답함이 너무 커서 상대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진짜 세상에 이렇게까지 못 할 수가 있다니 싶을 정도로 참담했기 때문에(그는 추후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다시 돌아가도 그를 이해하지는 못할 거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도 무척이나 답답했다는 걸 공감할 수는 있다. 아직 초보니까 그렇겠지? 집안일 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