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였다면 점심시간에 이비인후과 대기실에 앉아 있었어야 했다. 열흘 치 약을 다 먹으면 꼭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으라고 신신당부했던 의사의 멘트를 기억한다. 그러나 점심시간 직전, 새로운 팀 팀장님이 처음으로 점약이 있냐고 물으셨고, 아직 죽지 않은 나의 사회성이 차마 병원에 가려 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했다. 하하호호꺄르르가 난무하는 사회생활 점심을 먹고 나니 병원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2시를 조금 앞두고 빠른 걸음으로 이비인후과에 도착해 미리 접수를 했지만 이미 내 앞엔 네 명의 환자가 있었다. 오후 3시에는 회의가 있어서 무조건 그전에 회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뭐, 그래도 네 번째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들어간 환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들어간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고, 훌쩍이며 진료실을 나온 아이는 "나 이제 절대 병원 안 올 거야."라며 엄마 허리에 매달려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두 번째 환자는 무난했다. 그리고 대망의 세 번째 환자. 이 사람은 나와 함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남자였다. 이 남자가 먼저 탔고, 내가 나중에 탔는데 4층이 눌려 있길래 이비인후과에 온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가 나중에 타서 내가 먼저 내릴 수 있었지만, 온 순서대로 접수하는 게 맞으니까 일부러 기다렸다가 남자가 먼저 내리도록 했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을 후회한다.
세 번째로 들어간 남자는 15분이 지나도록 진료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시계는 벌써 2시 25분을 지나고 있었다. 병원에서 회사까지 진짜 빠르게 걸으면 10분, 그런데 외부 손님이 오는 회의니까 매너타임으로 10분 전에는 도착해 있으려면 내게 남은 시간은 15분밖에 없었다. 진료는 대략 2분, 염증은 없어졌는지 CT를 찍는 시간 2분, 결과까지 5분, 상담과 수납까지 하면 가까스로 맞을 거 같았다.
드디어 세 번째 환자가 나오고, 이제 내 이름을 부르겠구나! 했는데 아까 울던 여자아이가 다시 들어갔다. 약 처방을 받는 대화가 약 2분간 오고갔다. 내내 시계만 보고 있어서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제 드디어 나구나, 했는데 이번엔 웬 다른 여자 이름을 불렀다. 4시 30분이었다. 나는 너무 빡쳐서 카운터에 가서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섰다.
회의 끝나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났다. 밥 먹고 수업 가기가 빠듯해 내일 가야겠다 싶었는데, 내일 갑자기 재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병원이 회사 근처니까 월요일에나 병원에 갈 수 있는데... 나 다 나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