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를 낼 수 있을지 마음건강 클리닉에 갔는데 오히려 상담 과정에서 마음만 더 상하고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앞에 있는데 내 얼굴 너머 허공만 보고 말씀하시길래 뭘 보시는 거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 뒤에 대형 거울이 하나 있었다. 계속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상담하시는데... 뭘까... 내가 모르는 상담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상담을 하는 규칙 같은 게 있는 걸까...
"이직 생각은 없으세요?", "부서를 바꿔달라고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런 질문에 모두 "생각 없다", "어렵다", "우리 부서는 특수하다" 이런 대답만 하니까 빡쳤는지 차라리 퇴사는 어떠냐고, 퇴사 후의 주변 사람들 다 잘 살고 있지 않냐고 했다. 여기 57세 분들도 온다고, 아직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고 세상을 넓게 보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나도 고민 상담을 해줄 때 내가 제안하는 대안들에 모두 부정적으로 말하면 더 할 말이 없는 경험이 많긴 했는데, 여기는 그래도 그런 고민 끝에 다른 방안을 찾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닌가. 병가를 고민하는 사람 중에 이직과 전배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갔던 건데 오히려 퇴사를 권유하니 유일한 동아줄이 끊어진 기분이었다. 물론 퇴사를 해도 잘 살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 퇴사를 고민할 에너지가 없는 겁니다, 선생님.
물론 이런 생각을 면전에서 하지 못하고 "네네", "바꿔달라고 말해야 겠네요", "이직해도 되겠네요" 같은 대답을 했더니 선생님은 흡족한 자신의 표정을 거울로 보며 내게 약 처방전을 써주었다. 앞에서 말 못 하고 뒤에서 이렇게 꽁하게 일기로 꿍시렁 거려서 죄송해요, 선생님. 그치만 너무 별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