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 골골거리다 금토 홀라당 맛이 가서 집에만 있었다. 이불을 꽁꽁 둘러싸고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었어야 하는데 금요일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쉬지 못해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재택 해도 우직하게 노트북 앞에 앉아 8시간 풀로 일만 하는 사람 나야 나...
토요일에는 침대에 누워 영화 세 편을 보았다. <레이디 버드>, <송곳니>, <킬링 디어> 였다. 안타깝게도 셋 다 회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였다. 그나마 레이디 버드에서 예상치 못한 티모시 살라메를 봐서 잠시나마 눈이 즐거웠다. 다만 영화 속 그는 쓰레기 중에서도 최상급 쓰레기였기 때문에 보면서도 짜증이 났다. 잘생긴 쓰레기는 마음껏 미워할 수 없어서 화딱지가 난다. 아무 정보 없이 오프닝에서 눈코입 다 가려진 (그마저도 아웃포커싱 된) 남자 옆모습만 잠깐 보고 '오 티모시 살라메 닮았네' 했는데 진짜여서 스스로 놀랐다. 미남 레이더가 아직 죽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너무 놀고 싶어서 밖으로 박차고 나갔다. 가장 이동이 없는 동선을 택해 만화 카페에 가서 4시간 동안 <유미의 세포들>을 보았다.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빨리 순록이 나오는 파트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아직도 바비랑 꽁냥 거리고 있다. 그래도 유미와 바비가 만나는 그 시간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매우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사실 어제 놀다 들어온 후 컨디션이 뚝 떨어져 과연 출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12시간을 자서 그런지 말끔해졌다.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미리 치워뒀다. 우선 나의 아침을 여는 전화중국어를 다음 주로 연기했다. 점심시간에 예정된 PT도 취소했다. 비실거리며 지하철을 탔는데 한 정거장 지나서 바로 자리가 났다. 기쁘게 앉아서 선배의 업무 누수에 빡쳐하다 업무 연락을 주고받으며 출근한 후 퀵을 받고 / 다시 퀵을 보내고 / 연락처를 취합하고 / 클라이언트를 응대하고 / 협력사와 연락하고 / 패키지 최종본을 컨펌하고 / 회의 자료를 만들고 / 회의를 하고 / 다시 과제를 받고 / 병원에서 약을 짓고 / 퀵을 보내고 / 영상 편집본을 컨펌하고 퇴근했다.
일부러 버스 오는 시간에 맞춰 퇴근했는데, 걸어가면서 업무 연락에 대응하다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가 85분 뒤라서 너무 슬픈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는데 출근 때처럼 한 정거장 지나서 바로 또 앉았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행운이 연달아 일어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얼른 회복해서 다시 서서 다녀도 흔들림 없는 건강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