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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의 습격

지난주 목요일쯤부터 귀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면봉으로 귀를 휘적일 때 달그락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일시적이려니 하고 이틀을 더 그렇게 살았다. 귀를 꾸깃거리면 달그락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안 들릴 때도 있었다. 소리는 간헐적이었다가 일요일 오후에는 내내 들렸다. 무언가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검색해 보니 귀지 혹은 이물질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귀지라면 창피하고 이물질이라면 대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내가 자는 사이에 귀에 벌레가 들어가서 알을 깐 건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갔다. 알이 귀에 가득해서 "어휴, 이건 대책이 없습니다. 수술해야겠어요."라고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말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월요일 오전은 병원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니까 오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점심에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회사 앞 떡볶이 가게는 2012년 문을 연 곳이었다. 근처 즉석 떡볶이 가게 중에선 압도적으로 맛이 좋아서 종종 갔었다. 오랜만에 갔더니 인조가죽으로 된 의자가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누군가 당근마켓에 '의자 사용감은 좀 있지만 무료로 나눔합니다~^^'라고 글을 올리면 욕 얻어먹기 십상인 모양새였다. 세월을 담은 의자에 앉아 즉석 떡볶이와 쿨피스, 주먹밥, 순대, 맛탕 등을 주문했다. 떡볶이 냄비가 재빠르게 버너에 올라갔다. 떡볶이에서는 금세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우리 일행이 출입구 쪽에 앉아 있어서 바람이 슝슝 들어왔는데, 그 바람 따라서 모락모락 나는 김이 모두 내 얼굴을 온전히 뒤덮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바로 앞에 있는 팀장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리를 바꿀까 하다가 번잡스러워서 관뒀다. 팀장님은 미스트라고 생각하라 했다. 떡볶이향 미스트로 얼굴을 촉촉하게 적시며 다 익은 떡볶이를 먹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내 바지 정가운데에 빨간 떡볶이 국물이 흘러 있었다. 심지어 흰 바지였다. 지퍼 바로 옆쪽이라 공개석상에서 닦기도 애매했다. 못 본 척 하면서 이제 맛탕을 집어 먹는데 이번엔 맛탕 국물이 소매에 흘렀다. 끈끈한 맛탕의 잔여물이 내 손목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찔했다. 얼추 배도 다 찼겠다, 너무 여기저기 흘리고 먹어서 먼저 일어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지퍼 옆쪽 떡볶이 국물을 가리려고 패딩을 채웠지만 하필 또 짧은 패딩을 입어서 가려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관료마냥 양손을 조신하게 배 아래쪽에 포개어 얼른 사무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화장실에 텀블러 세척용 트리오가 있어서 말끔하게 지웠다. 떡볶이 연기를 잔뜩 흡수한 머리카락에서는 떡볶이 향이 났다.

한숨 돌리며 자리에 앉으려고 엉덩이를 쓸었는데, 엉덩이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무 비슷한 것들이 얼룩덜룩하게 박힌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려 엉덩이를 보자 인조가죽의자에서 떨어진 조각들이 달마시안처럼 내 엉덩이를 수놓고 있었다. 족히 30개는 넘어 보였다. 엉덩이가 따뜻해서 그런가 아주 그냥 착 달라붙어 있었다. 하필 또 인조가죽 조각들은 진한 회색이었다. 흰 바지에 검은빛 조각들이 우두두두두 박혀 있어서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화장실로 갔다. 이번엔 양손으로 엉덩이를 가린 채였다. 화장실에서 바지를 벗고 인조가죽 조각들을 하나하나 뜯어내며 현타가 왔다. 당분간 즉석 떡볶이는 안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후에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 달그락 소리의 원인을 찾았다. "음, 귀지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라는 선생님 말에 몹시 긴장했는데 "머리카락이었네요"라는 답변에서 안심했다. 벌레의 알은 아니었다. 작고 얇은 머리카락이 꽈배기처럼 한 바퀴 말려서 고막에 닿아 있었다. 선생님은 순식간에 쇽하고 빼냈다. 고막에 닿았다는 건 면봉으로 밀어 넣었다는 뜻이라고 해서 앞으로 면봉을 조심해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