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일주일 중 평일 5일 아침은 매일 이런 기분으로 일어나니까. 그래도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무거운 느낌이라 전화 중국어 수업에 결석했다. "오늘 수업하기 어려워요." 한 마디를 안 하면 전화는 2분 간격으로 집요하게 걸려오기 때문에 결국엔 제시간에 전화를 받고 준비된 멘트를 했다. 나의 결석 소식에 선생님은 반색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제시간에 전화를 받을 거였다면 그냥 수업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번 달 수업은 벌써 결석 3회라 한 번만 더 결석하면 미수료가 된다는 엄중한 경고 알림이 날아왔다. 지각이나 결석 한 번 하지 않던 모범 수강생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옛날 선생님이 그립다.
나태해진 건 하나 더 있다. 글쓰기 수업이다. 수업은 착실하게 다니고 있지만 과제를 매우 게을리하고 있다. 지금 고치고 있는 소설은 원래 지난주 목요일이 마감이었다. 다행인 건 마감에 제때 맞춰서 낸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높은 출석률을 보이지만 어쩐지 과제만큼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 혼자만 이 모양이 아니라서 큰 위로가 되지만 우리가 뜻을 모을수록 강사님의 수심은 더욱 깊어진다.
살면서 정해진 기안을 지키지 못한 건 처음이라 나도 이런 내가 당황스럽다. 변명을 하자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회사도 다녀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네?) 밤에는 자야 하니까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 그나마 헬스장을 제대로 안 다닌지 두 달은 된 거 같은데, 헬스까지 다녔으면 아찔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건 사실 핑계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마감을 지키지 못한 죄로 나는 거의 한 달째 마음속에 소설을 품고 산다. '소설 써야 하는데'를 돌덩이처럼 품고 매일을 사는 건 괴롭다. 그럼 쓰면 되잖아!라고 생각하겠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되돌아온다. 변명과 나태로 얼룩진 뫼비우스의 띠다. 독일의 수학자 뫼비우스도 약 200년이 지난 후 한국의 어떤 수강생이 과제 안 하는 핑계로 자신을 들먹일지 몰랐을 테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과제를 안 할 줄은 몰랐다. 글 쓰고 싶어서 국문과 복수 전공을 신청했다가 국문학만 디립다 분석하며 슬퍼했던 난데 막상 판을 깔아주니까 쓰기 싫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형국이라니.
지금도 퇴고를 하다가 너무 하기가 싫어서 오랜만에 장문의 일기를 썼다. 이런 의지로 소설이 술술 써지만 좋을 텐데. 덕분에 모든 거지같은 글을 쓰는 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작가의 드라마가, 소설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게 구린 건 그 사람의 탓은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