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감이 연장되어 오늘 저녁까지는 반드시 완성을 해야 한다. 작성한 페이지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됐다. 그냥 오늘은 나의 저녁이 밤 9시까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3시간 안에 A4 7장 이상을 쓸 수 있을까? 세 시간이 아니고 3주가 지나도록 한 장 썼는데? 소설을 쓰려고 하니 요즘 뜸했던 일기가 그리워져서 이렇게 기어 왔다. 이건 흡사 시험기간에 갑자기 방 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와 비슷하다.
요즘 날씨가 참으로 좋다. 나는 봄만 예쁜 줄 알았는데 가을에도 가을만의 정서가 있다. 싱그럽던 여름의 빛깔들이 차분하게 톤 다운되는 걸 보면서 내 머리도 톤 다운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더 시급한 게 펌인 거 같아서 장장 미용실에서 4시간을 소비했다. 이리저리 혹사당하는 머리카락과 두피를 마주보며 써야 할 소설을 생각했다. 컬은 매우 잘 나왔다.
미용실에 일정 금액을 충전했더니 서비스로 헤어팩을 주셨다. 샴푸와 트리트먼트, 헤어팩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다고 했는데 원장님은 나에게 헤어팩을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트리트먼트를 달라고 할 심산이었지만, 어버버하다가 결국 헤어팩을 손에 쥐고 나왔다. 중간에 용기 있게 "저 그냥 트리트먼트 가져갈게요"라고 당차게 외쳤으나 "이게 더 비싼데요? 그냥 이거 쓰세요."라고 하셔서 다시 어버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트리트먼트와 헤어팩의 가격을 검색했는데 둘 다 프로페셔널 제품이라 일반 소매가가 나오지 않았다.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 궁금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버버 하지 않고 똑 부러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