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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쫓기듯 살았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버스가 오는 시간을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에서 버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초조하게 닫힘 버튼을 누르곤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집 앞 건널목의 신호를 확인했고, 초록불이 되면 버스를 타기 위해 냅다 달렸다. 버스를 타고나면 지하철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하철에 타기 위해 빠르게 뛰었다. 지하철을 타고나면 환승 지하철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또 달렸고, 내가 원하는 칸에 서기 위해 경보하듯 플랫폼을 걸었다. 목적지에 내리면 누구보다 빠르게 개찰구를 통과하기 위해 또 빠르게 걸었고, 역 출구를 나선 후에는 회사 출근 카드를 빨리 찍기 위해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굳이 안 그래도 됐다. 정해진 출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늦어도 되는데, 그게 포기가 잘 안 됐다. 지금 이걸 놓치면 몇 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당장 눈 앞에 펼쳐질 시간의 손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항상 쫓기듯 회사에 갔고, 또 퇴근도 비슷했다. 오분이라도 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빠르게 걸었다. 나의 신경은 늘 곤두서 있었고,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이나 앞에서 폰을 보며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다. 오늘은 양산을 들고 거리를 아주 천천히 걸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뛰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걸어도 된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인 것 같다.

어제는 꿈에서 이미 촬영했던 음악 콘텐츠를 다시 촬영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무도 생생한 사유와 사진 폭탄들이 카톡으로 쏟아졌다. 그걸 보면서 한숨을 쉬다가 깼다. 오늘은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는 직원을 다짜고짜 찾아가 설득하는 꿈을 꿨다. "많이 부담스러우시죠? 저라도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걱정도 되고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이렇게 회사 생활하면서 한번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답변도 얼마든지 수정해서 다시 말씀하셔도 되고요. 지금 당장 결정 내리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집에 가셔서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세요."라는 멘트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도망치는 직원을 따라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서 이 멘트를 했다. 이번 달에 회사를 안 가는데 이틀 연속 꿈에서 일을 하는 걸 보니 업무 스트레스가 내 상상 이상으로 많았구나 싶었다. 7월에는 모든지 천천히 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