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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

직장인의 신분으로 교수님의 두 번째 수업을 들으며 대학생 때와는 달라진 나의 성향을 발견했다. 첫 번째, 교수님의 취향을 분석하는 내가 있다. 두 번째, 내가 쓴 답이 정답이 아니면 어마어마한 자괴감이 든다.

교수님이 흘리듯이 말한 개인적 호불호를 놓치지 않고 필기하는 내가 있었다. <신과 함께>는 엉망이고 <붉은 돼지>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에 해당 부분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었다. 대학생 때였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을 텐데 지금은 상사의 니즈에 맞춘 맞춤형 보고서를 쓰는 마음으로 별표까지 달아서 적어 두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보고서를 잘 써도 상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면 그 보고서는 갈 곳을 잃는다. 이 수업에서도 마지막에 졸업 작품을 써야 하던데, 그때 교수님의 취향을 맞추려는 직장인 마인드가 발동했다.

오답을 쓰면 자괴감이 드는 건 아마 회사 생활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올린 보고서가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으면 일단 너무 화가 난다. 납득할 수 없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상사의 피드백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건 '시간이 지난' 후고 당시에는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 그리고 사전에 중간보고를 다 했는데 말을 바꾸는 것에 몹시 화가 난다. 하지만 어쩌겠어, 남의 돈을 버는 게 그리 쉬운가. 수학 문제에서 답을 틀렸다면 자괴감까진 안 느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똑 떨어지는 답이 없는 문학에서 방향을 잘못 잡고 해석하면 왠지 모르게 굉장한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어쩐지 가끔 대화할 때 내가 핵심을 파악 못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기분이 아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재미있다. 대다수의 작품 해석을 잘못해 자괴감이 들지만 그래도 즐겁다. 주 2회 3시간짜리 강의를 들으라고 하면 그게 어떤 것이든 못 할 것 같았는데 관심 분야니까 재미있다. 이 마음이 내년까지 이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