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던 때였다. 자리가 없어서 아직 고교 과정에 있을 것 같은 남학생들이 앉은 자리 앞에 서서 어디에서 환승하는 게 좋을지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엄마 앞에 앉아있던 하얀색 티셔츠를 입은 남학생이 계속 힐끔힐끔 엄마를 보는 눈치였지만 개의치 않았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여기 앉으세요..."라며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닌가. 나도 놀랐고 엄마는 더 놀랐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의 엄마는 아직 자리를 양보 받기엔 너무나도 젊었기 때문이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엄마는 "어머, 저 아직 젊어요!"라고 큰 소리로 세 번 말했다. 자리를 양보한 남학생도 뻘쭘하고 엄마도 뻘쭘하고 그걸 지켜보는 나도 뻘쭘한 순간이었다. 남학생은 연신 자리를 권하다 '아직 젊다'라는 엄마의 적극적인 만류에 어정쩡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순간 나는 선의와 호의가 늘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나도 있었다. 지하철에 앉아서 가다가 한 아주머니와 딸이 내 앞에 섰길래 자리를 양보했더니 "어머, 아니에요!"라며 매우 불쾌해하던 그 모녀의 마음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불쾌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라서 "엄마가 모자 쓰고 마스크 써서, 머리카락이 안 보여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엄마는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버킷햇을 깊게 눌러 썼고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아니, 그럼 딸인 내가 엄청 늙어 보여서 엄마는 당연히 할머니라고 생각한 걸까? 아, 갑자기 불쾌하네...는 농담이고, 갈 곳 잃은 선의는 좋은 뜻임에도 불구하고 뻘쭘해질 수 있다는 걸 이렇게 또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