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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출근길에 무언가를 보고 '오, 이거 오늘 일기로 쓰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메모장에 적어둘까 하다가 '이만큼 좋은 소재를 내가 잊을 리 없지!' 했는데 황당할 정도로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장면이었는지, 대체 무슨 소재였는지 퇴근길 내내 되짚어보았는데 전혀 모르겠다. 너무 답답한데 어이가 없어서 웃기다.

완연을 넘어 어마 무시한 여름이다. 출근이 늦은 편인데도 출근길에 이미 발이 닿는 모든 곳이 후끈후끈한 철판과 같은 기분이 든다. 오전에도 숨이 막힐 듯한 더위가 가득한데 정오 주변은 오죽할까 싶다. 이렇게 더울 때 안전모를 쓰고 건설 현장을 쏘다니며 열심히 촬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이렇게 한낮의 더위를 체감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지금이 정말 천국과도 같은데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즐거웠나? 과거 미화 필터가 씌워진 건가? 아무튼 기억 속의 나는 나름의 보람과 즐거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보람도 없고 즐거움은 더더욱 없다. 뭐 하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돈을 쏟아부어서 건조한 배가 절벽으로 항해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그냥 노를 젓고 있는 기분이다.

새삼 일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욕도 제로, 성과도 제로. 제로로 수렴하는 나의 직장인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