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소문으로만 듣던 오픈런에 동참하게 되었다. 10시 25분이 되자 쇼핑몰 입구의 1차 관문이 열렸고 정확히 10시 30분이 되자 2차 관문인 회전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쇼핑몰로 쏟아져 들어갔고 나는 내심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이 두어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진풍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친구가 루이비통에서 보고 싶은 가방이 있다고 하여 일단 루이비통 매장 앞으로 갔다. 내가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웨이팅이라는 엄중한 책임을 맡았다. 백화점은 오픈했는데 매장의 셔터는 사진처럼 반쯤 내려가 있기에 뭐지? 했더니 매장 오픈은 11시란다. 다른 명품 매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루이비통에는 카카오톡을 통해 번호를 남기는 시스템이 있어 매장 앞에 30분간 줄을 서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지만 다른 매장들은 이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 건지 사람들의 줄 서기가 이어졌다. 한두 푼도 아니고 나름의 목돈을 들여 물건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장 앞에 30분씩 줄을 서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자라 매장도 줄은 안 서고 들여보낸다!
작년까지 나는 물욕의 화신이었는데 올해는 물욕이 많이, 아주 많이 사그라들었다. 올해는 옷을 100만 원어치도 안 샀다고 하자 친구들이 모두 놀랐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건 기적 같은 일이다. 덕분에 눈 돌아가는 명품 매장을 지나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작년보다는 조금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