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에 6개월 뒤의 간 CT 촬영 예약을 잡아뒀었다. 너무 먼 미래가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간호사 선생님과 화기애애하게 날짜와 시간을 고르던 기억이 난다. 그 6개월 뒤가 바로 오늘이었다. 그 사이 소소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론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상태는 반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아서 속절없이 흐른 시간에 헛웃음이 났다.
회사 동료가 5년 전쯤 조영제를 마시고 간 CT를 찍었다는 후기를 듣고 과거 인간의 존엄성을 잃었던 위장조영술 촬영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 나는 허연색 꾸덕꾸덕한 액체를 억지로 마시고 X-ray판 같은 곳 위에서 주문에 맞춰 앞으로 굴렀다 뒤로 굴렀다 바구니에 든 계란처럼 데굴데굴 구르기를 반복했다. 검사 후 본 거울 속 내 입가엔 미세한 입술 주름 틈 사이사이까지 허연 액체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존엄성 탈곡 시즌 2를 찍겠구나 싶어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병원에 갔더니 요즘은 혈관에 조영제를 주입한다고 했다. 팔뚝에 두꺼운 바늘을 꽂고 CT 기계에 누워 혈관에 호스를 연결하니 정말 꾸르꾸르르륵 뭔가가 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동시에 몸이 후끈해지면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변화가 내 몸을 휘감았다. 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과 함께 '이래서 혈관에 독 같은 거 조금만 주입해도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혈관 기준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꽤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혈류는 급물살인 모양이었다. 쇼크 반응이 나오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금식 공복을 채우러 병원 앞 식당으로 갈비탕을 먹으러 갔다. 찬으로 깍두기랑 배추김치 둘 다 나오길래 남길 것 같아서 "배추김치는 안 주셔도 돼요."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저희 김치 국산이에요."라고 하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멘트가 나와서 당황하느라 리액션을 못했다. 김치의 국적을 고려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지 못해서 갈비탕을 먹는 내내 찜찜했다. 대신 남김없이 싹싹 다 먹고 나왔다. 다음엔 배추김치를 골라서 사장님의 자부심을 지켜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