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쓸 말이 없어서 2016년 4월에 썼던 일기를 우려 보기로 결심했다. 저 때는 몰랐다, 진짜 팬심이 에너지가 되어 우리나라 국격이 올라가리라고는.
[팬심의 에너지] 2016-04-04 18:21
블락비는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나와 윤정 선배는 피규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올림픽 공원으로 달려갔다. 윤정 선배네 팀의 후배, 선영 프로의 친구가 이 콘서트와 관계된 일을 한다고 했다. 공짜 티켓 두 장, 우리는 둘 다 크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지코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주린 배를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일요일 공연은 오후 5시 시작이었다. 우리의 수업은 오후 5시에 끝난다. 우리는 시작부터 공연의 절반을 포기했다. 그래도 배고픔은 포기하지 못했다. 우리는 상수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는 세 정거장 구간, 그리고 또 스물세 개 역으로 이어지는 5호선 안에서 우걱우걱 빵과 칼로리 바를 섭취했다. 성인이 된 후 지하철 안에서 음식을 먹어본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 떳떳했다. 언제 도착하나 싶을 때쯤 이번 역이 올림픽공원이니까 얼른 내리라는 방송이 나왔다.
역 출구와 공연장은 멀지 않았다. 우린 잰 걸음으로 종종종 젖은 땅을 밟듯 뛰었다. 일요일이 콘서트래서 나는 토요일 밤 자기 전에 블락비 뮤직비디오를 한 편 보았다. 멤버가 일곱 명이라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선배, 블락비 멤버 일곱 명이더라?" "안나 씨, 블락비 일곱 명이야? 다섯 명 아니었어?" 우리는 블락비에 지코와 박경이라는 멤버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박경이 어떻게 생긴 아이인지는 알지 못했다. 총 일곱 명, 지코가 있음, 박경이라는 멤버도 있는데 누군진 모름. 이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입구에서 선영 프로의 친구라는 사람을 만나 티켓을 전달받았다. 그분은 친절하게도 공연장 안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훅, 하고 뜨거운 습기와 열기가 다가왔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사랑을 나누던 두 주인공은 마차 안에 있었다. 케이트 윈슬렛이 마차 창문에 손을 대자 쭈욱-하고 습기로 얼룩진 유리가 미끄러졌었다. 공기 중에 손을 댈 수 있다면 틀림없이 쭈욱-하고 미끄려졌을 만큼 실로 엄청난 열기였다.
운 좋게도 우리가 들어갔을 땐 막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영상 속 멤버 한 명 한 명이 비출 때마다 엄청난 함성으로 자신들의 애정을 표현했다. 실물이 아니고 영상일 뿐인데도 그 함성은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우리는 영상이 아닌 공연 중 자리를 찾으러 들어왔다면 뒷좌석 사람들에게 쌍욕 듣고 얻어맞았을 거 같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공연은 짜임새와 무대 장치 모두 훌륭했다. 지코는 역시나 멋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우리 '오빠'를 위해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오빠'의 작은 눈짓, 작은 몸짓 하나 하나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던 팬들이었다. 이 팬심을 우리나라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선진국이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