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가 반을 휩쓸었다. 엄청나게 야하다며 너도나도 앞다투어 그 책을 읽었다. 나는 책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표지 디자인이 구렸고 두께가 너무 두꺼운 데다 두 권이나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야한 책 쓰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나의 독서 목록 선택지에서 누락되어왔다.
그러다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는 인터넷상의 글은 읽지 않는다며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좋은 문장을 읽어야 하는데, 인터넷의 글은 좋지 않은 문장이 많다"라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인터넷에 좋지 않은 문장을 남기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뜨끔했다. 그럼 대체 그가 쓰는 좋은 문장은 무엇일까, 이 호기심이 나를 '1Q84'로 이끌었다.
첫 챕터를 읽자마자 깨달았다. '차가 막혀서 한 여자가 비상계단으로 갔다'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될 상황이 너무나도 근사한 소설이 되어 있었다. 역시는 역시였다. 이번 봄은 하루키의 책들과 함께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