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면

작가는 2015년 당시 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이 그림을 그려놓은 캔버스 뒷면에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미술관에서는 그 작품의 뒷면까지 볼 수 있도록 두 개의 캔버스를 허공에 매달아두었다. 그 앞에 예닐곱 살쯤 된 여자아이와 아이의 아빠가 쪼그려 앉아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작품을 가리키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건넸고, 아이는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채 눈을 반짝이며 그림을 보았다. 동선이 겹쳐서 다른 전시관에서도 몇 번 더 그 부녀를 마주쳤는데, 아이의 관람 태도가 또래답지 않게 썩 점잖았기에 미술관에 한두 번 와본 것 같지 않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오는 단란한 가족이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예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