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정리하다가 2010년과 2011년, 2012년에 갔던 여행을 기록해둔 수첩을 발견했다. 날짜별로 시간까지 적어가며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차곡차곡 적혀있었다. 세세하게 적혀있는 그 글을 보니 다시금 그때의 여행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의 공기, 습도까지 기억날 정도로 아득했다.
세 차례의 여행기를 전부 다 읽은 후 느낀 점은 이러했다. 나는 정말 무계획적인 여행을 즐겼었구나! 심지어 셋 중 하나는 엄마를 모시고 간 후쿠오카 여행이었는데, 현지 호텔에 도착해서야 뭘 할지 계획을 짰다는 글이 있었다. 심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늘 내가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업무를 할 때는 메모장을 켜서 우선순위별로 할 일을 적어두는 편이고, 여행을 갈 때도 목적지의 운영시간, 찾아가는 길까지 세세하게 짜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적어도 2012년 전까지의 나는, 일단 비행기와 호텔만 예약하고 나머지 행선지는 크게 크게 정해놓거나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당황스러운 과거의 나였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은근슬쩍 변하기도 하나보다. 아니면 변한 걸 몰라서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획성이 없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모두 여행은 즐겁게 기억하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